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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 제가 '참여예산'으로 동네를 바꿔본 이야기

 

들어가며: 정책, 솔직히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책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저는 솔직히 TV 뉴스에서 앵커가 읽어주는 보도자료, 국회의사당에서 벌어지는 토론, 어딘가 높은 곳에서 결정되어 내려오는 무언가가 먼저 떠올랐습니다. "정책은 전문가들이 만드는 거고, 나는 그냥 따르면 되는 거지"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정책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일상에 가까이 있습니다. 아침에 출근길에 건너는 횡단보도, 동네 골목의 가로등, 주말에 아이들이 뛰어노는 공원, 어르신들이 모이는 경로당. 이 모든 것들이 누군가의 제안과 결정, 그리고 예산 집행을 통해 만들어진 것들이거든요.

저도 이런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막상 "그래서 나는 뭘 할 수 있는데?"라는 질문 앞에서는 늘 멈춰 섰습니다. 어디서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지 몰랐고, 설령 안다고 해도 "내가 말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라는 회의감이 컸거든요.

그러다 2024년 3월부터 8월까지, 대구광역시 주민참여예산 청년서포터즈로 활동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 6개월이 제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았어요. 정책은 위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 시민이 제안하고 토론하고 선택하는 과정 속에서 더 단단해진다는 걸 직접 눈으로 확인했거든요.

오늘은 그 경험을 바탕으로, 주민참여예산이 뭔지, 왜 청년들이 참여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지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주민참여예산, 대체 뭔가요?

시민이 예산을 제안하는 제도

주민참여예산을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시민이 지방자치단체 예산의 일부를 직접 제안하고 심사·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보통은 이렇잖아요. 시청이나 구청에서 예산을 짜고, 의회에서 심의하고, 그대로 집행됩니다. 시민은 그 결과만 받아보는 거죠. "올해 이런 사업 합니다"라는 보도자료를 뉴스로 접하는 게 전부인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주민참여예산은 다릅니다. 시민이 직접 "우리 동네에 이런 게 필요해요"라고 제안할 수 있고, 그 제안이 검토와 심사를 거쳐서 실제 예산에 반영될 수 있어요. 말 그대로 내 아이디어가 세금으로 실현되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거죠.

어떤 제안을 할 수 있나요?

구체적인 예를 들어볼게요.

  • 안전 분야: "OO초등학교 앞 횡단보도에 과속방지턱이 없어서 위험해요" → 과속방지턱 설치 사업 제안
  • 환경 분야: "이 골목은 밤에 가로등이 너무 적어서 무서워요" → 가로등 추가 설치 사업 제안
  • 복지 분야: "우리 동네 어르신들이 모일 공간이 부족해요" → 경로당 리모델링 또는 신설 제안
  • 문화 분야: "청소년들이 방과 후에 갈 곳이 없어요" → 청소년 문화공간 조성 제안
  • 교통 분야: "이 버스 노선은 배차 간격이 너무 길어요" → 버스 노선 조정 건의

이렇게 일상에서 느끼는 불편함, 필요한 것들을 제안할 수 있습니다. 거창한 정책 아이디어가 아니어도 돼요. 오히려 내가 매일 겪는 작은 불편함이 더 좋은 제안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청년이 참여해야 할까요?

청년은 수많은 이슈의 당사자입니다

청년은 주거, 일자리, 교통, 안전, 돌봄, 교육 등 정말 다양한 이슈의 직접적인 당사자입니다. 월세 부담, 대중교통 불편, 취업 스트레스, 육아 고민까지.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정책의 영향을 받고 있어요.

그런데 정작 정책 논의 테이블에서 청년의 목소리는 종종 얇게 반영됩니다. 왜일까요?

첫째, 참여 방식 자체가 낯설어요. 주민참여예산이라는 제도가 있다는 것도 모르는 분들이 대부분이고, 안다고 해도 어떻게 참여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둘째, 정보 접근이 어려워요. 지자체 홈페이지 깊숙이 들어가야 관련 정보를 찾을 수 있고, 그마저도 행정 용어로 가득 차 있어서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셋째, 회의감이 커요. "내가 말해봤자 달라지는 게 있겠어?" "어차피 다 정해져 있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참여를 가로막습니다.

작은 아이디어가 실제 예산이 됩니다

서포터즈 활동을 하면서 제안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기회가 많았는데요, 정말 놀라웠던 건 생각보다 작은 아이디어도 실제 예산과 연결될 수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우리 아파트 단지 앞 신호등 점멸 시간이 너무 짧아요"라는 제안이 실제로 검토되어 신호 체계가 조정된 사례도 있었고, "동네 공원에 그늘막이 없어서 여름에 못 쉬어요"라는 제안이 예산에 반영되어 파고라가 설치된 경우도 봤어요.

거창한 정책 전문가가 아니어도 됩니다. 내 생활 반경에서 느끼는 불편함을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으면, 그게 정책의 시작점이 될 수 있어요.


현장에서 마주한 '정책의 진짜 얼굴'

좋은 제안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서포터즈로 활동하면서 수많은 제안서를 봤습니다. 어떤 제안은 "이거 있으면 좋겠어요" 수준에서 끝나기도 하고, 어떤 제안은 심사위원들의 눈을 사로잡아서 최종 선정까지 가더라고요.

차이가 뭘까요? 좋은 제안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첫째, 문제가 구체적입니다.

❌ "이 거리 밤에 너무 어두워요" ✅ "OO초등학교에서 OO정류장까지 약 300m 구간이 가로등 간격이 40m 이상으로 넓고, 특히 오후 6시~8시 통학 시간대에 학생들이 위험합니다"

같은 문제를 지적하더라도, 구체적인 위치, 거리, 시간대, 영향받는 대상이 명확할수록 설득력이 높아집니다.

둘째, 대상이 명확합니다.

"주민들을 위해"보다는 "OO동에 거주하는 초등학생 약 500명을 위해", "65세 이상 독거 어르신 약 200명을 위해"처럼 정책의 수혜자가 구체적으로 드러날수록 좋습니다.

셋째, 기대효과가 설명됩니다.

단순히 "좋아질 것 같아요"가 아니라, "보행 사고 예방", "야간 범죄 예방", "주민 문화 접근성 30% 향상"처럼 이 사업이 실행되면 뭐가 어떻게 나아지는지 구체적으로 적혀 있으면 심사위원들이 판단하기 쉬워집니다.

넷째, 비용과 실행이 현실적입니다.

"100억 들여서 대형 문화센터 지어주세요"보다는 "기존 유휴 공간을 활용해서 2천만 원 정도로 청소년 독서실을 만들어주세요"처럼 지자체 예산 구조에서 실행 가능한 범위로 제안해야 통과 확률이 높아집니다.

정책 글쓰기는 홍보가 아닙니다

이 과정에서 제가 깨달은 게 하나 있어요. '정책 글쓰기'가 단순히 예쁜 홍보 문구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정책이 아무리 좋아도 사람들이 모르면 소용없잖아요. 알아도 어렵게 느껴지면 참여가 줄어들고, 결국 정책 효과도 떨어집니다.

그래서 정책 글쓰기의 핵심은 시민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제도를 설명하고, 참여 방법을 명확하게 안내하는 것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참여하세요!"라고 외치는 게 아니라, "이렇게 하시면 됩니다"를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거죠.


주민참여예산, 어떻게 참여하나요?

지자체마다 운영 방식이 조금씩 다르긴 한데요, 기본적인 흐름은 비슷합니다. 대구시를 기준으로 설명드릴게요.

1단계: 제안 접수

지자체 홈페이지 또는 주민참여예산 전용 플랫폼에서 제안서를 제출합니다.

제안서에 들어가는 내용은 대략 이렇습니다:

  • 사업명: 어떤 사업인지 한눈에 알 수 있는 제목
  • 제안 배경: 왜 이 사업이 필요한지, 현재 어떤 문제가 있는지
  • 사업 내용: 구체적으로 뭘 하자는 건지
  • 사업 위치: 어디에서 진행되는지
  • 대상: 누가 혜택을 받는지
  • 기대 효과: 이 사업이 실행되면 뭐가 좋아지는지
  • 예상 비용: 대략 얼마나 들 것 같은지

처음엔 이게 다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데요, 완벽하게 안 써도 괜찮습니다. 핵심은 "내가 왜 이게 필요하다고 느꼈는지"를 솔직하게 쓰는 것이에요.

2단계: 검토 및 심사

제출된 제안은 담당 부서에서 검토합니다.

  • 법령에 위반되지 않는지
  • 이미 진행 중이거나 계획된 사업과 중복되지 않는지
  • 예산 범위 내에서 실행 가능한지
  • 해당 지자체 소관 사업인지

이 과정에서 보완이 필요하면 제안자에게 연락이 옵니다. "이 부분 좀 더 구체적으로 써주세요", "비용 산출 근거를 추가해주세요" 같은 피드백을 받을 수 있어요.

3단계: 시민 투표 및 공론

검토를 통과한 제안들은 시민 투표나 공론 과정을 거칩니다. 여러 제안 중에서 어떤 것을 우선적으로 추진할지 시민들이 직접 투표로 결정하는 거죠.

이 단계가 중요한 이유는, 내 제안이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의 좋은 제안에 투표함으로써 정책 결정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제안을 직접 하지 않아도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요.

4단계: 예산 편성 및 집행

최종 선정된 사업은 다음 해 예산에 반영되고, 실제로 사업이 추진됩니다.

예를 들어 2024년에 제안해서 선정된 사업은 2025년 예산에 반영되어 2025년에 실행되는 식이에요. 시간이 좀 걸리긴 하지만, 내 아이디어가 실제로 동네를 바꾸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정책기자단의 역할: 정보 전달에서 참여 안내로

서포터즈 활동을 하면서 정책기자단의 역할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게 됐습니다.

정책을 소개하는 글은 넘쳐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래서 나는 뭘 하면 되지?"에서 멈춰요. 정보는 많은데,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거죠.

정책기자단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정책기자단의 글은 정책을 예쁘게 정리하는 수준을 넘어서, 참여 방법을 정확히 안내하고 '나도 할 수 있겠다'는 감각을 주는 글이어야 합니다.

특히 청년층은 카드뉴스나 짧은 요약에 익숙하잖아요. 그래서 핵심만 빠르게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실제 참여 단계에서는 꼼꼼한 정보가 필요합니다.

  • 신청 기간이 언제부터 언제까지인지
  • 누가 참여할 수 있는지
  • 뭘 준비해야 하는지
  • 어디에 문의하면 되는지

이런 '실전 정보'가 있어야 읽는 것에서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마무리: 작은 참여가 정책을 바꿉니다

정책은 거대한 담론이 아닙니다.

우리가 매일 지나가는 길의 안전, 일하고 쉬는 공간의 품질, 필요한 서비스를 제때 받는 경험. 이게 정책이에요.

주민참여예산은 그 변화를 시민이 직접 만들어갈 수 있도록 설계된 제도입니다. 거창한 전문 지식이 필요한 게 아니에요. 내가 사는 동네에서 느끼는 불편함, 필요한 것들을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으면 충분합니다.

서포터즈로 활동하면서 확인한 건 단순합니다.

참여하는 사람에게 정책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닙니다.

한 번 제안해보면 다음부터는 동네를 보는 눈이 달라져요. "여기 이러면 좋겠다", "저건 왜 저렇게 되어 있지?"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생각을 제안으로 바꿀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정책이 더 이상 멀게 느껴지지 않아요.

정책을 이해하기 쉽게 풀고, 참여의 장벽을 낮추는 일. 그것이 제가 앞으로도 하고 싶은 일입니다.

"정책이 어려워서 못 한다"가 아니라 "알면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시민의 언어로 꾸준히 전달하고 싶습니다.


📌 참여하고 싶으신 분들을 위한 정보

  • 대구광역시 주민참여예산: 대구시청 홈페이지 → 시민참여 → 주민참여예산
  • 제안 접수 기간: 매년 상반기 (지자체마다 다르니 홈페이지 확인 필수!)
  • 문의: 각 지자체 예산담당부서 또는 주민참여예산 담당자